본문 바로가기
  • 동하의 힘찬새발걸음(하와이 할레아칼라)
  • 네바도 데 똘루까
  • 황룡
* 국내여행 */19년 국내여행

190330, 보성 대원사, 순천 송광사, 봄이 찾아 오는 절집 탐방 - 아내와 함께

by 멋진동하 2019. 3. 31.
728x90
반응형

2019년 03월 30일 토요일 흐림

보성 대원사, 순천 송광사 드라이브와 봄이 찾아오는 절집 탐방

 

대원사

대원사는 전남 보성군 문덕면 천봉산에 있는 사찰로써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503(백제 무령왕 3) 아도(阿道)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신라에서 활동하던 아도가 백제에 사찰을 세웠다는 점은 다소 신빙성이 떨어진다.  창건 당시에는 죽원사(竹原寺)라 불렀다고 한다. 통일신라 때는 오교구산(五敎九山) 중 열반종의 8대 가람에 들었다고 하며, 1260(고려 원종 1) 송광사 5대 국사(國師) 천영(天英: 12151286)사세를 크게 일으켜 대가람의 모습을 갖추었다.이 때 산 이름도 중봉산(中鳳山)에서 천봉산으로 바꾸고 절 이름도 죽원사에서 대원사로 바꾸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하였으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1757(영조 33) 불에 탄 것을 1759(영조 35) 현정이 중창하면서 건물 16동을 복원하였고, 거느린 암자만도 상원암(上院庵)호적암(虎蹟庵)  12개나 되었다. 1948년까지만 해도 10여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1948여수·순천사건 때 대부분 불에 탔다. 1990년 선원과 요사·일주문·주지실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요사·일주문·주지실 등이 있다이 중 극락전은 1948년 여수·순천사건으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을 때 유일하게 남은 건물이다정면 3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배흘림을 한 기둥이 주목된다. 내부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고, 협시불은 오른쪽에만 있다. 왼쪽 협시불은 1950 6.25전쟁중 불에 타 없어졌다고 한다. 1981년 10월 20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된 뒤 1982년 해체 복원된 바 있다. 극락전 오른쪽에 있는 부도는 고려 때 이 절을 크게 일으킨 자진국사(慈眞國師천영의 부도로, 1973년 4월 21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총 높이 2.6m이다. 인근의 백민 미술관, 서재필 생가 및 기념공원, 주암호반, 그리고 고인돌 공원과 연계되는 교육문화탐방 루트가 있어 해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대원사 [大原寺] (두산백과)

 

 

 

천봉산 등산 안내도, 2014년 9월 7일 대원사에서 시작하여

까치봉 마당재 말봉산 천봉산 대원사로 산행을 했던 적이 있었지요.

 

 

 

오늘은 대원사 입구 벚꽃길을 구경하러 왔는데

아직 제대로 피지를 않았습니다.

 

 

 

천봉산 대원사 일주문을 통과해서 대원사를 탐방하려 합니다.

 

 

 

입구에서는 작고 귀여운 화분을 전시해 놓고 판매를 하고 있구요.

 

 

 

많은 사람들이 대원사를 즐기러 왔군요.

 

 

 

우리는 한꽃

 

 

 

하얀 목련은 완전히 만개를 하였고

 

 

 

봄의 공기라고 하기에는 바람이 너무 찹니다.

 

 

 

사천왕루를 통과하면

 

 

 

대원사가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기와불사는 1만원이라고 합니다.

 

 

 

부모공덕불 전경

 

 

 

대원사 부모공덕불 안내

 

 

 

부모공덕불

 

 

 

크게 잡아 봅니다.

 

 

 

뒤돌아 본 부모공덕불과 사천왕루

 

 

 

아담한 연못이 자리하고

 

 

 

연못 주변으로 수선화가 활짝 피었군요.

 

 

 

연못 앞에서 흔적을 남겨 봅니다. 장미

 

 

 

동하도 흔적을 남기고

 

 

 

동하

 

 

 

장미

 

 

 

연지문을 통과하면서

 

 

 

뒤돌아 봅니다.

 

 

 

몽실몽실 탐스럽게 피어 있는 하얀 목련

 

 

 

대원사는 백제의 고찰이기도 합니다.

 

 

 

대원사 극락전

 

 

 

이것은? 부처의 발자국이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발자국을 따라 갈 수 있으려나요?

 

 

 

극락전 앞에서 흔적을 남겨 봅니다.

 

 

 

목련꽃 아래에서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도 있고

 

 

 

극락전 옆으로 태안지장보살이 자리하고 있지요.

 

 

 

 백제고찰의 금종루, 특이하게 종이 금도금이 되어 있네요.

 

 

 

목련꽃과의 만남

 

 

 

목련꽃과 함께 한 번 어울려 보고

 

 

 

흔적을 남겨 봅니다.

 

 

 

극락전 전경

 

 

 

태안지장보살

 

 

 

태안지장보살 안내

 

 

 

담장 밖으로 나와서 바라 본 태안지장보살과 극락전

 

 

 

노란 산수유와 보라색 목련도 한창 꽃을 피우려 하고 있군요.

 

 

 

보라색 목련

 

 

 

하얀 목련과는 또 다른 분위기가 연출되지요.

 

 

 

 진분홍빛 복사꽃도 흐드러지게 피었네요.

 

 

 

은근히 심금을 뛰게 해 주는 듯, 진분홍빛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 옆의 산수유

 

 

 

원초적 노랑빛 또한

 

 

 

봄을 알려주는 대명사의 산수유이지요.

 

 

 

스님께서 아름다운 음률을 선사해주며 공연을 하고 있군요.

 

 

 

티벳풍의 건축물, 약사여래법당

 

 

 

티벳박물관 건축물도 티벳풍이지요.

예전에 박물관은 들려 봤기에 오늘은 생략을 합니다.

 

 

 

입구에서 흔적만 남기고 

 

 

 

 대원사 벚꽃길 5.5km 구간의 벚꽃, 아직은 너무 피지 않아

볼 품이 없고 일주일 뒤에 오면 장관이겠습니다.

아직 이른 벚꽃길을 따라 송광사로 이동합니다.

 

 

 

훌쩍 순천의 송광사로 순간이동을 했고, 송광사는 2013년 3월 24일 첨단산악회에서 조계산

탐방후 하산길로 잡아서 탐방한 이래 실로 6년만에 다시 찾아 보는 오늘의 송광사입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파는데 많이 비싸군요. 1인당 3,000원씩이나 합니다.

 

 

 

송광사 입구의 활짝 피어 있는 벚꽃으로 위안을 삼아 보고

 

 

 

승보종찰조계산송광사

부처님은 진리에 눈뜬 사람으로 2600년 전 인도에서 태어나셨던 석가모니 부처님을 먼저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깨친다음 우리를 위해 설하셨던 내용으로 오늘날 팔만대장

경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으로 승가는 스님들과 신도들로 구성된 신앙공동체를 가리킨다.

실로 부처님의 가르침은 승가를 통해 오늘날까지 면면히 전승되어 오고있다. 이렇게 보면 부처님은

진리의 길을 먼저 걸어 깨치셨던분으로 그 길을 우리들에게 친절히 가리켜 주시는 길잡이(導師)요,

가르침은 그 길을 표시하고 있는 지도나 이정표와 같고, 승가는 진리의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세 가지 보배인 삼보는 거기에서 그치지않고 더욱 내면화되어 바로

우리들이 본래부터 갖추고잇는 참마음을 가리킨다. 원효스님께서도 "돌아가는 바 그 하나인 마음

(一心)이 바로 삼보인 것이다"라고 확언하고 계신다. 곧 우리들 본래의 마음이 다름아닌 부처요

진리며 승가라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 승가를 가장 귀한 보배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가?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세계, 진리의 세계에 다다를 수 있으며 우리들 존재의 원천인 본래의 나,

참 나에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값이 없는 보배요 천하와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다.

불교의 신앙은 바로 그 보배를 향해 가는 것이다.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승가에 귀의합니다 하는 이른바 삼귀의(三歸依)가 바로 그것이다. 이 세상 어떤 것 보다도 보배롭고

소중한 세가지 보배를 향해 내 모든 것을 다하겠습니다 하는 의지의 표현이 삼귀의인 것이다. 따라서

삼보에 귀의하겠습니다하는 말은 나는 "이렇게 살겠습니다" 하는 삶의 방향과 목표를 고백하는 서원

이요 다짐이다. 이처럼 부처님, 가르침, 승가야말로 불교를 받치는 세 기둥이요 불교를 불교이게

하는 세가지 요소이다. 그래서 한국 불교에는 일찍부터 세 가지 보배를 가리키는 삼대 사찰이 있고

이를 삼보사찰(三寶寺刹)이라고 한다. 곧 경남 양산의 통도사, 경남 합천의 해인사 그리고 전남

순천의 송광사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佛寶寺刹),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의 경판이 모셔져있기 때문에 법보사찰(法寶寺刹),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고 있기때문에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고 한다.

 

 

 

청량각은 송광사가 자리잡은 조계산의 계곡물이 동구에서 굽이치는 지점의 깊숙한 계곡에

홍교(虹橋)를 쌓아올려 그 다리 위에 조성된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21년에 중건하였고,

1972년 승주군의 보조에 의하여 중수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천 송광사 [順天 松廣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청량각 앞을 지나 왼쪽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만나는 명품 소나무 한 그루

 

 

 

그리고 하늘을 찌를듯이 꼿꼿히 서 있는 편백나무 숲을 지나면

 

 

 

불교용품점 판매장이 나오고

 

 

 

천천히 일주문을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갑니다.

 

 

 

조계산 일주문 입구

 

 

 

조계산 일주문을 통과하면

 

 

 

멋진 아치교의 우화각을 만나고

 

 

 

계곡과 어울려주는 송광사의 누각이 아름답지요.

 

 

 

송광사 현판을 보면서 우화각을 통과하게 되고

 

 

 

송광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계곡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범종루

 

 

 

감로수에는 한붕화상이 새겨져 있군요.

 

 

 

대웅보전 마당에는 연등이 수 없이 많이 걸려 있고

 

 

 

송광사 대웅보전 안내

 

 

 

아름다운 건축물, 송광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벽면에는 빙 둘러 벽화가 그려져 있지요.

 

 

 

순천 송광사 [順天 松廣寺]

송광사는 전남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 서쪽에 있는 사찰로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

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

(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때까지 송광산이라 불렸는데, 보조

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렸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이후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 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

(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후 승려 취봉

(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

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

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

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

經疏開玄鈔)》(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

(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에 있다.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6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순천 송광사 [順天 松廣寺] (두산백과)

 

 

 

여기는 뭐가 있길레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지요?

 

 

 

고목이 되어서도 노란빛깔을 내뿜으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는 산수유로군요.

 

 

 

정겨운 징검다리

 

 

 

징검다리를 배경으로 흔적을 남겨 봅니다. 장미

 

 

 

동하도 송광사의 계곡을 배경으로 흔적을 남기고

 

 

 

송광사의 아름다운 계곡은 작은 폭포를 만들며 흐르고 있군요.

 

 

 

송광사 앞으로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을 감상하며

보성 대원사와 순천 송광사의 절집 탐방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동하의 힘찬새발걸음 | 140907, 보성 천봉산, 애련정 대원사 까치봉 말봉산 천봉산 산앙정 대원사 & 티벳박물관 - 아내와 함께 - Daum 카페

 

140907, 보성 천봉산, 애련정 대원사 까치봉 말봉산 천봉산 산앙정 대원사 & 티벳박물관 - 아내와

2014년 09월 07일 일요일 맑음 보성 천봉산, 까치봉 말봉산 천봉산 611m 산앙정 티벳박물관 탐방의 날  오늘은 작은 추석날, 보성에 있는 천봉산을 찾아본다.산행코스 : 애련정-대원사-까치봉-마당

cafe.daum.net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