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03월 27일 일요일 맑음
2022년 03월 26일(토) ~ 03월 27일(일), 1박 2일 호랭이부부 진해, 진주 봄맞이 여행
5) 다섯번째 이야기, 진주 진주성 탐방 & 창평 송죽회관 저녁식사
여행코스 : 공북문-영남포정사-북장대-창렬사-호국사-서장대-촉석루-의기사-의암-계사순의 단
-공북문 & 창평 송죽회관 저녁식사
참석자 : 강을원 이공여, 김동구 한춘자, 김태우 최미라, 유중안 홍경화, 홍구식 김숙자, 이상 10명
아침 09시 정각에 광주첨단에서 출발하여 1박 2일 코스로 봄맞이 진해 및 진주 여행을 떠난다.
여행경비 : 광주첨단-진해, 마산, 진주, 왕복 480km, 주유비 : 140,000원, 외 총합계 : 1,500,000원,
진주성[ 晉州城 ]
경남 진주시 남성동(南城洞) ·본성동(本城洞)에 있는 성. 사적 제118호이다. 진주는 삼국시대 백제의 땅으로 신라와 접경한 최전선에 위치하여 두 나라 간에 전략적인 요충지로 치열한 공방전이 일어났던 곳이다. 삼국이 통일 된 이후에도 진주는 중요한 거점으로 인식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구를 섬멸하기 위한 기지로서 역할했다. 조선시대에도 진주는 그 중요성이 높았으며 경상도와 호남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조선시대에는 도호부가 설치되었고 경상우병영의 역할을 담당했다. 진주성은 백제 때 건설되었으며 당시에는 거열성지(居烈城址)였다고 하며, 산성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남강이 흐르고 강변 절벽 위에 성채가 만들어졌고 서쪽으로는 하천이 있어 천혜의 요새였다. 고려 말 공민왕(恭愍王) 때 7차례 중수되면서 남해안에 출몰하여 분탕질하는 왜구를 방비하는 기지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 들어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시민(金時敏) 장군이 성채를 보강하여 왜군의 공격을 대비하였다. 1592년 9월 왜군은 약 2만 5천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으로 공격해 왔지만 김시민 장군에게 대패하여 임란 3대첩(壬亂三大捷) 중의 하나가 벌어진 곳이다. 1593년 6월 왜군은 곡창지대인 호남을 공략하여 군량미를 확보하고자 약 10만 명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진주성은 호남으로 가는 길목으로 진주성이 무너지면 호남을 잃게되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2차 전투에서는 군관민 6만이 최후까지 항쟁하여, 장렬한 최후를 마쳤고 왜군도 막대한 피해를 입어 호남으로 쳐들어갈 여력을 상실하였다. 이때 논개(論介)는 적장을 안고 남강(南江)에 투신한 일화가 유명하다. 1605년(선조 38) 병사(兵使) 이수일(李守一)이 진(鎭)을 성내로 옮기고 성이 너무 넓어 수비가 곤란하다 하여 내성을 구축하였다. 그뒤 병사 김태허(金太虛)가 1607년 포루(砲樓) 12개를 증축하였고, 1618년(광해군 10) 병사 남이흥(南以興)이 성 수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지금의 진주성은 대략 이때 완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성의 둘레는 약 1.7km이고, 외성의 둘레는 약 4km이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주성 [晉州城]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세부일정표
진주성 안내도
진주성 고 지도
공북문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멋진 풍채로 다가서는 공북문
매표를 합니다. 입장료는 1인당 2,000원
공북문을 통과해 진주성 내부로 들어가야지요.
진주성, 진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고 있는 호국의 성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 만화 형태로 안내되어 있습니다.
조선군 3,800명과 일본군 30,000명의 8대 1 전투가 시작된다.
성 밖에서는 의병장 곽재우 등이 김시민 장군을 도와 적의 배후를 공격 교란시킨다.
한양이 함락되었고 팔도가 무너졌는데 새장 같은 진주성을 어찌 지키랴, 항복하라.
진주성을 지키는 군, 관, 민은 수천 개의 대나무 사다리로
성벽을 기어오르는 일본군에게 펄펄 끓는 물을 붓고 바윗돌을 던졌다.
6일간의 대접전, 김시민은 일본군의 침략을 대비하여 사전에
염초(화학연료) 150근과 총통 170자루를 제작하여 철저히 준비를 하였다.
김시민 장군은 밤낮으로 성을 방어하면서도 군사들을 챙기고 사기를 북돋우웠다.
그러나 전투 마지막 날 일본군의 탄환에 맞아 쓰러진다. 그의 나이 39세였다.
10전 전승 조선군은 단 한 번도 일본군에 패하지 않았다. 진주대첩은
김시민 장군의 지도력, 의병들의 활약, 진주 백성의 애향심이 합쳐진 위대한 승리이다.
김시민 장군 전공비
충무공 김시민 장군 상, 김시민 장군도 시호를 충무공으로 받았다고 하지요.
충무공 김시민 장군
문화해설사를 예약해 설명을 들으며 역사문화 탐방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영남포정사로 발길을 옮겨가고
뒤돌아 본 충무공 김시민장군상과 공북문
영남포정사 문루
영남 포정사 문루 안내
하마비
하마비 안내
영남포정사 문루를 지키고 있는 포졸
진주성 비석군, 비석들이 즐비하군요.
경절사
경절사 안내
경절사는 출입금지?
북쪽 가장 높은 곳에 북장대가 서 있고
진주성 지도에서 열심히 해설을 해 주시는 해설사님
진주성의 고 지도인데, 햇빛에 반사되어 잘 보이지를 않는군요.
이런 그림이었겠지요? 진주성 고지도
청계서원은 그냥 스쳐 지나고
청계서원 안내
진주 박물관이 내려다 보이고
뒤돌아 본 청계서원
개나리와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화사한 개나리꽃밭에서 나는나비
자유부인
솔향
장미
동하
진주성 담벼락을 따라 가는 길
진주 성포루에서 진주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진주 성포루 안내
성포루의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옛날 진주성의 본 모습은 도로가 있는 곳이 모두 해자였다고 합니다.
진주 국립박물관
호국사와 서장대가 바라보이고
호국사 직전에 창렬사를 들려보기로 합니다.
창렬사의 계단에서 깜짝 복고풍으로~ㅎㅎ
계단을 올라 창렬사를 들어가 봅니다.
창렬사 김시민 장군외 여러 장수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곳이지요.
창렬사는 특이하게 서쪽을 향해 지어진 사당이라고 합니다.
창렬사에서도 문화해설사님의 해박한 지식으로 장시간에 걸쳐 해설이 이어지고
맨 왼쪽이 김시민 장군이고 일곱분 중 호남사람이 다섯분이라고 합니다.
창렬사
'무진주 무호남' ,진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라고
결사항전을 부르짖었던 김시민 장군과 장수들의 위패를 모셔 놓은 사당이지요.
창렬사 오른쪽 한켠에는 '제장군졸지위'의 비석이 서 있고, 장수가 아닌
일반병사를 위한 비석을 박정희 정권에서 이후에 세웠다고 합니다.
수 많은 군졸들의 원혼들을 달래줄 비석
진주 창렬사입니다.
호국사와 서장대가 바라보이고
진주성 호국나무
한 번도 허리를 굽히거나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서, 600여년 동안 진주성 서문을 지켜오던 나무,
1592년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시민과 함께 한 진주성의 수호신이었던 나무, 안타깝게도
2019년 6월 18일 옛 추억만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더 이상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진양호 우드랜드에, 여기 그루터기에는 느린 우체통을 만들어 진주성 호국나무의
소식을 대대로 전해주려고 합니다.
월영산 호국사
호국사 안내
천천히 계단을 따라 서장대로 올라갑니다.
서장대에서 뒤돌아 본 창렬사와 호국사
진주성 서장대 전경
진주성 서장대 안내
서장대
남강과 진주 시가지가 내려다 보이고
아름다운 남강, 그리고 음악분수대와 천수대교
이제 촉석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갑니다.
3.1 독립운동 기념비를 스쳐 지나고
진주 박물관 앞에는 벚꽃이 제법 활짝 피었지요.
국립 진주박물관
촉석루가 바라보이고,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을 던졌다는 남강
당겨보니 촉석루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로 몸을 던졌다는 의암이 내려다 보이지요.
아름다운 진주성 공원
잔디밭도 부드러운 풍경
천천히 옮겨가는 발걸음
우리가 진주성을 입장했던 공북문이 바로 건너에 바라보이고
촉석루를 배경으로 솔향과 장미
촉석루에 도착합니다.
촉석루 내부로 들어가 볼까요?
촉석루 안내
촉석루 개념도
촉석루
촉석루는 남장대의 역할까지 같이 했는가 봅니다.
촉석루 2층으로 올라가 볼까요?
촉석루에서 바라 본 남강
촉석루에서 문화해설사님의 깊이 있는 해설이 이어지고
모두 경청하며 새겨 듣습니다.
대들보는 전나무로 만들었는데 처마에서 처마까지
통나무로 이루어진 촉석루만의 기법이라고 합니다.
촉석루에서 내려서고
지수문을 통과하여 의기사로 들어갑니다.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셔 놓은 의기사에서 논개에 대한 해설을 듣고
진주 의기사 안내
논개의 영정
의기사에서 바라 본 촉석루
의기사의 담 밖에는 쌍충사적비가 자리하고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의암으로 내려가 봅니다.
한차례 해설을 듣고
수 많은 이름들이 새겨져 있는 촉석루 아래 바위절벽
오른쪽의 바위가 의암,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는 그 유명한 의암입니다.
진주 의암 안내, 논개의 순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의로운 바위라는 뜻의 의암
의기논개지문
진주 의암사적비 안내
의암에서 바라보이는 남강과 진주대교
진주대교의 교각에 매달려 있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것은 '논개의 쌍가락지'라고 합니다.
진주성은 이와 같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천혜의 요새라고 하지요.
의기논개지문 사적비와 의암이 내려다 보이는 풍경
촉석루로 되돌아 올라갑니다.
촉석루의 성벽
앗~ 석류나무가 아주 멋있게 자라고
촉석문을 바라봅니다.
뒤돌아 본 웅장하고 아름다운 촉석루
호국종각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 앞에서 해설을 듣고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 안내
우리 각시들은 서서히 지쳐가는 듯~ㅎㅎ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에 올라 해설을 다시 듣습니다.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순의 단에서 바라 본 호국종각
진주 촉석정충단비명
진주 촉석정충단비명,
여기에서 핵심은 '무진주 무호남' 진주가 없으면 호남이 없다.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뜻깊은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왼쪽이 김시민 전공비, 오른쪽이 진주 촉석 정충단비
김시민 전공비와 진주 촉석 정충단비 안내
촉석문 밖에는 현재 진주 외성을 발굴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진주 시가지, 진주 경찰서 앞까지 진주성의 해자가 있었고, 외성이었다고 하는군요.
진주 경찰서 앞까지 진주 외성이었다고~
공북문을 향해 언덕을 내려서고
노란 산수유꽃과 하얀목련꽃이 탐스럽지요.
진주성 탐방을 하러 입장을 했었던 웅장한 규모의 공북문
창렬사 방향으로 시작해서 촉석루 방향으로 돌아 공북문까지 한바퀴
돌아 나오며 진주성 탐방을 마칩니다. 문화해설사님의 해설이 있어
진주성 관련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했던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광주로 돌아오던 중 지리산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고
담양 창평의 송죽회관에 도착합니다.
송죽회관 메뉴
저쪽 남자들은 청둥오리 전골을,
이쪽 여자들은 청둥오리 소금구이를 시켰습니다.
청둥오리가 천천히 익어가고
소주 한 잔 곁들여 얼풋하고 푸짐한 저녁식사가 되어지지요.
이렇게 1박 2일 동안 호랭이 부부들의 봄맞이 진해, 진주 여행을 마감하게 됩니다.
모든 일정을 기획하고 추진해 준 자유 유중안친구, 정말로 수고했고
덕분에 모두가 즐겁고 행복한 여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하의 힘찬새발걸음 | 220326, 1)진해 드림로드, 미스터뽕 짬뽕 & 청룡사 드림로드 안민고개 드림로드 청룡사 - 호랑이부부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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