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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여행 */14년 Japan 쓰시마

140201, 일본 쓰시마섬, 금석성 정원과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고려문

by 멋진동하 2014.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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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01일 토요일 맑음

 

10)일본 쓰시마섬, 금석성 정원과 덕혜옹주 결혼 봉축비 고려문

 

☞대마 역사자료관&고려문&조선통신사비☜

1978년12월에 개관하여, 도내의 문화재, 고고역사 자료, 민속자료, 소문고,

조선통신사 두루마리그림 등 귀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덕혜옹주 결혼 기념비☜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1931년 5월 쓰시마 번주소 다케유키백작과 결혼하여,

두사람 사이에는 딸 정혜가 있었으며, 1955년 이혼후 1961년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이 비는 두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뜻으로 건립되었으며,

현기념비는 2001년 11월에 복원되었다.

 

☞팔번궁[하치만궁]신사☜

천주교 신자였던 대마도 제19대 도주 부인인 마리아 부인의

고결한 신앙과 품행을 기르기 위한 신사이다.

 

 

 

 

세부일정표

 

 

 

만송원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금석성 입구 누각,

제대로 된 일본풍입니다. 정면방향

 

 

 

금석성 입구 누각, 뒤측면 방향

 

 

 

금석성 입구에 들어서며 정면을 바라보고

 

 

 

금석성 정문에서 장미

 

 

 

금석성 정문에서 동하

 

 

 

금석성 입구를 통과해서 뒷면

 

 

 

수선화가 예쁘게 피었고

 

 

 

수선화

 

 

 

이왕조 종가 결혼 봉축 기념비

 

 

 

조선통신사 막부접우의 비

 

 

 

가네이시 성터이군요.

 

 

 

금석성 정원

 

 

 

덕혜옹주 어결혼 봉축기념비

조선왕조 26대 고종의 딸 덕혜옹주는 5월 쓰시마 번주소 다케유키 백작과 결혼하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딸이 있었으며 1955년 이혼후 1962년에 귀국한 덕혜옹주는

1989년 창덕궁 낙선재에서 별세하였다. 이 비는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한다는

뜻으로 건립되었으며 현 기념비는 2011년 11월에 복원된 것이다.

 

 

 

봉축 기념비

 

 

 

소화 6년 5월 길일에 결혼을 했다는 기록

 

 

 

금석성 정원에서 한 컷

 

 

 

동하도 흔적을 남기고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둘이서 함께

 

 

 

금석성 안내

 

 

 

금석성을 둘러보고 다시 나옵니다.

 

 

 

금석성을 나서며 장미

 

 

 

금석성을 나서며 동하

 

 

 

금석성과 헤어지고

 

 

 

청수산성 안내

 

 

 

고려문으로 향합니다.

 

 

 

고려문,

고려문은 옛 이즈하라의 성문으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현재의 문은 태풍으로 인해 훼손된 것을 1989년 다시 복원한 것이다. 사지키바라성 앞에 세우고 <고려문>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매우 흥미로운데 <조선통신사>를 맞이할 때 이 문을 통과했기 때문에 <조선통신사 맞이문>이라고도 한다. 화재로 소실 된 것을 재건축 하였다. 현재의 고려문은 원래 대마도 도주가 머물던 사지끼바라 성에 있던 것으로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축 하였으며 그러다가 1987년 태풍의 피해를 받아 무너진 부재를 수습하여 이곳에  옮겨 복원한 것이다. 고려문이란 이름은 에도시대에 일본을 방문한 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조선국통신사지비

쓰시마번은 임진왜란 후 조선과의 국교회복을 위해 전력을 다하였고, 그 결과 약 200년간(1607~1811) 12회에 걸쳐 통신사 사절이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루어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 관계를 21세기 한일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고자 1992년 비를 세웠다. 선조40년(1607) 여우길(呂祐吉)을 정사(正使)로 한 사행단(使行?) 467명을 시작으로 1697~1811(210년)동안 12회에 걸쳐 일본을 방문한 조선 통신사를 기리며 양국의 선린우호관계를 교훈삼아 21세기의 한일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세운 비석이다. 조선통신사 일행은 조선정부의 최고 관료와 학자, 문화인을 비롯하여 화려한 악대,무인, 통역관 등 300~500명 정도의 인원이었으며 조선의 앞선 문화로 인해 일본인들에겐 하나의 "문화적 충격" 을 가져다 주었고 당시 통신사 일행을 구경하기 위한 인파를 "누에"와 비교할 정도이니 그 광경을 짐작할만하다. 대마도번이 조선통신사 방문 전후 3년간의 행사 준비 및 행사에 사용되는 돈이 100만냥(약 5580억)이나 되었다고 한다. 통신사 일행이 묶었던 숙소에는 수많은 일본의 학자들과 문인들이 조선의 학문과 문화를 배우기 위하여 모여들었고 우리 조선통신사를 모티브로 한 가라코오도리와 후시미,이즈모 등의 인형들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설명을 한 번 듣고

 

 

 

안내문

 

 

 

대마도 민속박물관 입구

 

 

 

대마도 민속박물관 입구

 

 

 

대마도 민속박물관 전경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섭니다.

 

 

 

여기도 토리이가 있군요.

 

 

 

반사경 앞에서

 

 

 

담장 위로 보이는 나무들이 괜찮아 보이지요.

 

 

 

하치만궁 신사 입구에 도착하고

 

 

 

하치만궁 신사 전경

 

 

 

하치만궁 신사까지의 시간을 마치고,

다음 코스는 수선사와 최익현선생 순국비을 탐방하고, 귀국길에 오릅니다.

감사합니다.

 

 

https://cafe.daum.net/kdk4876/pGm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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